런웨이 위 정호연의 아이코닉 룩 7
뉴욕의 빨강 머리 시절부터 앰배서더로서 루이 비통 잠수교 쇼에 선 순간까지.
2021년 8월, 모델 정호연의 인생은 아주 새로운 장을 맞았다. 배우가 되기를 마음먹고 배우 엔터테인먼트인 사람으로 소속사를 옮긴 건 그보다 몇 달 전의 일이지만, ‘오징어 게임'이라는 타성 좋은 도약대는 분명 그가 가 본 적 없던 길을 열어 주었다.
2010년부터 10년 넘게 모델로 활동해 온 그는 국내외를 오가며 매 쇼와 화보, 캠페인에서 다양한 얼굴을 보여 줬다. 디자이너의 페르소나가 되어 그 철학을 짧은 호흡으로 표현하는 것은, 어쩌면 단편영화를 다작하는 배우의 일과 닮았다. 다만, 비교적 언어가 친절한 편인 영화나 시리즈에서는 그 맥락에 대한 단서가 더 빈번히 주어져 캐릭터의 다각적을 면을 마주하게 된다는 점에서 결을 달리한다. 그의 캐릭터 새벽을 통해 우리는 정호연이 감정을 보는 이에게로 옮겨 놓는 법이 몇 겹이고 촘촘해질 수 있다는 걸 목격했다. 다른 내러티브가 주어졌을 때 그가 어떻게 피어날지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
그렇다고 그의 모델 경력이 여기서 끝인 것은 아니다. 그는 앰배서더로서 루이 비통(Louis Vuitton)의 쇼에 서는 한편, 뉴진스(NewJeans)의 ‘Cool with you’ 뮤직비디오에서는 에로스가 되어 바짓자락을 펄럭이며 인간의 뒤를 따라가던 모습은 여전히 잘 걷는 모델임을 보여 줬다. 다음은 레드카펫 위의 아이코닉 룩을 전하기를 바라며, 정호연의 런웨이 위 아이코닉 룩 일곱 가지를 돌아본다.
루이 비통 2023년 프리폴 쇼
바로 아래서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정호연은 루이 비통과 인연이 깊다. ‘오징어 게임’의 기세가 심상치 않음을 본 하우스는 2021년 10월 정호연을 발 빠르게 글로벌 앰배서더로 발탁했다. 그의 첫 멧 갈라, 그에게 드라마 시리즈 부문 여자배우상을 안긴 미국배우조합상(SAG), 그가 커버를 장식했던 i-D ‘The Out Of Body’ 이슈에 모두 루이 비통이 있었다. 앰배서더가 되고 나서 몇 차례 런웨이에 서며 쇼의 문을 열고닫았지만, i-D 코리아에서 소개하는 그의 첫 번째 아이코닉 런웨이 룩으로 가장 최근 있었던 2023년 프리폴 잠수교 쇼만한 선택이 없겠다. 정호연은 80년대 스타일 트랙 재킷과 가죽 미니 스커트에 청키 부츠를 신고 쇼의 막을 열었다. 니콜라 제스키에르(Nicolas Ghesquière)가 즐겨 쓰는 대담하고 구조적인 실루엣을 간단히 요약한 룩이다. 그의 오프닝 룩은 럭셔리 하우스가 본 푸른 서울과 함께 한국 패션 역사에 남았다.
루이 비통 2017년 가을-겨울 쇼
그 인연의 시작은 2016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주 앞서 쇼가 열린 밀라노의 펜디(Fendi), 막스 마라(Max Mara)와 함께, 루이 비통은 정호연을 먼저 알아본 하우스 중 하나였다. 해외로 무대를 넓히고 첫 시즌이었던 2017년 봄-여름 시즌, 정호연은 루이 비통과 시티 익스클루시브 계약을 맺으며 파리 패션 위크에 데뷔했다. 바로 다음 시즌이었던 2017년 가을-겨울 쇼에는 월드와이드 익스클루시브 모델로 섰다. 루브르에서 펼쳐진 이 쇼에서 그는 미디 길이의 가죽 코트와 드레스를 입고 런웨이를 걸었다. 역시 실루엣과 디렉터의 패널 구조 애호가 돋보이는 룩을 하고 그는 한국 모델 전성시대의 서막을 알렸다.
샤넬 2018년 봄-여름 오트쿠튀르 쇼
물론 그가 루이 비통만의 뮤즈였던 건 아니다. 정호연은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의 사랑을 받은 모델이었다. 익스클루시브 계약 없이 처음 선 파리 패션 위크에서 샤넬(Chanel)의 부름을 받은 이래로 그는, 이 전설적인 디자이너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이끈 대부분의 쇼에서 걸었다. (역시 라거펠트가 지휘하고 있던 펜디 쇼에는 그 전부터 섰다.) 라거펠트가 직접 카메라를 잡은 2018년 가을-겨울 캠페인에 얼굴을 비치기도 했는데, 캠페인이 공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호연은 모델스닷컴(Models.com) 톱50에 이름을 올렸다. 그가 일곱 차례 찾은 샤넬 패션쇼 중 2018년 봄-여름 오뜨 꾸뛰르 쇼를 소개한다. 정호연이 입은 트위드 수트는 하우스의 유서 깊은 장인 정신으로 돋보이고, 쇼가 펼쳐지는 그랑 팔레(Grand Palais)는 영락없는 파리 공원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둥근 실루엣과 함께 착용한 헤어 피스가 어쩐지 개량된 한복의 그것과 족두리를 연상시켜 묘하게 한국적인 구석이 있는 아이코닉한 룩이다!
모스키노 2020년 프리폴 쇼
파리의 패션 하우스를 먼저 소개했지만 해외 무대 중 정호연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곳은 분명 뉴욕이다. ‘오징어 게임’ 이후 빗발치듯 들어온 인터뷰에서 그는, 뉴욕 생활을 하며 자연스럽게 자신을 포지셔닝하는 법을 터득했고, 완벽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났다고 말하곤 했다. 제레미 스캇(Jeremy Scott), 제레미 스캇의 모스키노(Moschino), 비블로스(Byblos) 쇼에서처럼, 뉴욕의 정호연은 펑키한 무드를 곧잘 입었다. 여러 매체를 통해 알려졌듯 그가 ‘오징어 게임’ 오디션 합격 소식을 들은 것은 2019년 말 뉴욕 패션 위크 중의 일이었는데, 서울행 비행기표를 끊기 직전 선 런웨이는 뉴욕의 상징과도 같은 낡은 지하철을 배경으로 한 모스키노 2020년 프리폴 쇼다. 이미 충분히 맥시멀한 스팽글 드레스에 과감한 프린트의 다운 베스트와 가죽 장갑, 스파이크를 두른 초커 네크리스를 매치하는 것으로 완성된 룩은 뉴욕 패션의 경쾌한 리듬을 발산한다. 구석구석 가르마를 타 땋은 머리는 펑키 지수를 있는 대로 끌어 올린다.
랙앤본 2017년 봄-여름 쇼
정호연이 아직 배우를 겸하지 않던 시절에 선 마지막 무대도, 2016년 해외 커리어를 시작한 무대도 뉴욕이었다. 머리카락을 빨갛게 물들이고 선 쇼는 그에게 다음 쇼를, 그 쇼는 그다음 쇼를 물어다 줬다. 같은 시즌의 루이 비통 익스클루시브 계약 역시 뉴욕에서 보여준 존재감의 연쇄작용이 남긴 결과였다. 그가 해외 활동을 시작하자마자 선 쇼 중 하나가 랙앤본(Rag & Bone) 2017년 봄-여름 쇼다. 랙앤본은 아이코닉한 빨강 머리를 십분 이용해, 대체로 차분한 색상이 감싼 컬렉션 가운데 유일한 올 레드 룩을 그에게 입혔다. 뉴욕에서의 첫 시즌이 정호연의 모델 인생에서 차지하는 지위와, 이에 톡톡히 기여한 빨강 머리를 한 데 담은 상징적인 룩이다!
자크뮈스 2020년 봄-여름 쇼
자크뮈스(Jacquemus)도 정호연을 사랑했다. 정호연은 보통 일 년에 두 번 쇼를 거하게 여는 자크뮈스의 런웨이에 세 시즌 연달아 섰다. 살아본 적도 없는 곳에 대한 향수를 일으키는 브랜드 인스타그램 속 이미지들의 확장판인 자크뮈스의 쇼는 낭만적이다. 설립 10주년을 맞아 시몽 포르테 자크뮈스(Simon Porte Jacquemus)는 그가 뿌리를 둔 프랑스 프로방스의 라벤더밭을 배경으로 쇼를 펼쳤다. 그림 같은 자크뮈스의 2020년 봄-여름 쇼 현장에서 역사가 쓰이는 그 순간에 정호연도 함께했다. 그는 명랑한 핑크 색상의 미드라이즈 팬츠 위로 낙낙한 라이트 옐로우 코트를 덮고, 똑같이 명랑한 핑크 카펫을 멜랑콜리한 표정으로 걸었다.
보테가 베네타 2018년 봄-여름 쇼
그가 런던 패션 위크와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건 사실이지만 밀라노를 짚지 않고 넘어가긴 아쉽다. 시티 익스클루시브라는 놀라운 방식으로 프랑스 럭셔리 하우스 런웨이에 데뷔한 전적이 있는 정호연이, 이탈리아 하우스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의 쇼에는 오프닝을 장식하며 등장했다. 당시 보테가 베네타를 이끌던 토마스 마이어(Tomas Maier)는 정호연에게 정돈되고 균형 잡힌 실루엣의 1960년대 스타일 수트를 입혔다. 소맷단과 치마 밑단, 포켓을 장식한 리벳 디테일은 단정한 룩에 재치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