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으로 보는 기대작 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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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적인 영화팬에게 10월 부산행은 연례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 축제 부산국제영화제가 지난주 막을 내렸다. 최고 효율의 테트리스를 하듯 매 학기 시간표를 공들여 짜던 학창 시절 연륜은, 관람 일정을 가능한 한 빽빽하게 만드는 일에 톡톡히 동원된다. 아쉽게 티케팅에 실패한 날에는, 노련한 영화제 프로그래머의 통찰력이 아니었다면 인생에 찾아오지 않았을 고마운 작품들을 마주하게 된다. 10월 부산이 영화팬에게 주는 낭만과 설렘의 정도는, 9월 패션인이 창의적인 패션위크에서 받는 그것과 비슷할 거다.

저마다의 사정으로 부산을 찾지 못한 영화팬은 극장 개봉을 기다려야 한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공식 초청작 69개국 209편 중 가장 크게 화제 된 작품 6편과 개봉 예정일 살펴본다. 개막작 ‘한국이 싫어서’, 미셸 공드리의 복귀작 ‘공드리의 솔루션북(The Book of Solutions)’, 홍상수의 ‘우리의 하루’, 제73회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 ‘파리 아다망에서 만난 사람들(One the Adamant)’ 등 함께 소개하지 못해 아쉬운 영화들로 가득했던 상영작 리스트는 여기에서 확인하자.

사진 제공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가여운 것들 - 요르고스 란티모스

해부학 교수 고드윈(윌렘 대포)은 어린아이의 지능을 가진 아름다운 여성 벨라(엠마 스톤)와 함께 산다. 고드윈을 동경하는 제자 맥스(라마 유세프)는 교수와 가깝게 지내게 되면서 벨라를 만나고 그의 이상 행동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머지않아 고드윈이 얼마 전 자살한 여자를 의학적으로 되살려 벨라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드러나지만, 맥스는 이미 벨라에게 빠졌다. 맥스는 고드윈의 제안에 따라 벨라와 약혼하기로 하는데, 변호사 던칸(마크 러팔로)의 등장과 함께 이들 사이에는 뜻밖의 지각 변동이 일어나게 된다. ‘가여운 것들(Poor Things)’은 벨라가 고드윈의 ‘보호’에서 벗어나며 겪는 기이한 성장기다. 사탕 더미를 떠올리는 컬러팔레트와, 벨라가 입은 드레스의 지고 소매, 뒤로 넓게 펼쳐진 낭만적인 구름은 몽글몽글한 이야기를 기대하게 하지만, 영화가 ‘더 랍스터(The Lobster)’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The Favourite)’ 등으로 잔혹한 우화를 짜내는 데 일가견이 있음을 증명한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작품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뚝딱대는 벨라를 연기한 엠마 스톤의 능청스러움은 유려하고, 노련한 윌렘 대포와 마크 러팔로의 호연은 말할 것도 없다. 제80회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 2024년 개봉 예정이다.

사진 제공 부산국제영화제

괴물 - 고레에다 히로카즈

초등학교 5학년 미나토(쿠로카와 소야)의 행동이 이상해졌다. 담임교사 호리(나가야마 에이타)에게 구타를 당했다는 아들의 말을 듣고 엄마 사오리(안도 사쿠라)는 학교에 찾아가 항의하지만 학교는 형식적인 사과로 일관할 뿐이다. 호리의 시선으로 소개되는 다음 장에서 그는 더 이상 앞 이야기의 체벌 교사가 아니다. 진실이 여전히 모호하게 남은 가운데, 미나토와 그의 친구 호시카와(히이라기 히나타)가 화자로 초대되고 나서야 마침내 하나의 이야기 덩어리가 완성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怪物)’은 어느 누구를 쉽게 괴물로 낙인찍지 않는다. 3부 구성은 한 사건을 향한 세 가지 시점을 제시한다. 개인, 가족, 사회 차원의 이해를 아우르며, 소년의 시점을 취한 것은 그의 전작 ‘아무도 모른다(Nobody Knows)’ ‘어느 가족(Shoplifters)’을 떠올린다. 서사의 입체적인 짜임새와 더불어 호흡의 차이, 카메라의 쓰임 등 영화 언어도 다른 어조를 갖는다. 줄곧 혼자 이야기를 써온 고레에다와 협업한 사카모토 유지에 제76회 칸영화제 각본상을 안긴 작품. 최근 세상을 떠난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이 담겼다. ‘괴물’은 오는 11월 개봉한다.

사진 제공 부산국제영화제

나의 올드 오크 - 켄 로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2회 수상한 몇 안 되는 감독, 영국의 거장 켄 로치가 언제나처럼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를 대변한다. 그의 26번째 장편 ‘나의 올드 오크(The Old Oak)’는 영국 북부 탄광촌이었던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40년 전 폐광하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마을에서 주민들의 불안이 커져만 가던 어느 날, 시리아 난민들이 마을로 집단 이주를 하게 된다. 가뜩이나 먹고 살기 어려운 주민들과, 가족 잃고 집 잃고 말도 통하지 않는 곳으로 피신 온 난민들 사이에 인종주의 문제가 불거질 위험마저 생긴 가운데, 마을 유일한 펍 ‘올드 오크’의 주인 티제이(데이브 터너)와 난민 여성 야라(에블라 마리) 사이 우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영화는 나눌 것이라고는 슬픔과 두려움뿐인 아웃사이더와 아웃사이더의 연대를 그린다. 인간애를 믿으며 희망적인 질문을 던진 ‘나의 올드 오크’는 기억력과 시력의 쇠약을 고백한 87세 노장의 은퇴작이다. 개봉일은 미정이다.

사진 제공 넷플릭스

더 킬러 - 데이빗 핀처

노랑과 파랑의 대비. 오로지 정보 전달이 용이하도록, 관객이 봐야 하는 대상의 움직임에 집중한 전지적인 카메라 워크. 보이스오버. 폭력. 한 시퀀스만 가져다 봐도 누구의 손을 탄 작품이란 걸 눈치채게 하는 데이빗 핀처는 탁월한 테크니션이자 스타일리스트다. (자칭) 장편 데뷔작 ‘세븐(Seven)’부터 ‘조디악(Zodiac)’,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 ‘나를 찾아줘(Gone Girl)’ 등을 남긴 서스펜스의 대가, 핀처가 그의 본영인 스릴러로 돌아왔다. 역시 감독의 인장이 짙은 신작 ‘더 킬러(The Killer)’는 빈틈없는 전문 암살자의 이야기다. 영화는 ‘나를 찾아줘’의 일명 쿨 걸(Cool Girl) 독백을 닮은 남자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계획대로 해”라고 반복해 말하는 차분한 목소리, 미니멀 사운드 디자인, 엄격한 카메라 앵글 등 자잘한 장치들은, 심장박동마저 뜻대로 조절할 수 있는 이 남자가 냉혈한임을 보여주도록 작동한다. 다만 기계처럼 철저한 그의 계획엔 없던, 계획이 틀어지는 일이 벌어지면 영화는 비극으로 치닫게 된다. 핀처의 전작들이 그렇듯 호흡이 좀처럼 느슨해지지 않아서 다 보고 나면 숨이 가쁠 것이고, 영화제에서 ‘더 킬러’를 먼저 본 이들은 좁은 진폭에서 미묘하게 변하는 마이클 패스벤더의 연기가 소름 끼쳤다고 입을 모아 전했다. 10월 25일 일부 극장에서 개봉하고 11월 10일 넷플릭스로 공개된다.

사진 제공 그린나래미디어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 하마구치 류스케

하마구치 류스케의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Evil Does Not Exist)’는 극과 다큐멘터리의 경계에 있는 영화다. ‘드라이브 마이 카(Drive My Car)’ 음악을 맡았던 에이코 이시바시의 공연용 영상으로 기획됐다가 우연히 극영화로 다시 태어난 작품에는, 각본이 완성되기 전에 채집한 영상이 섞여 있다. 영화는 도쿄 인근, 아직 개발되지 않은 산골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마을에 지역 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글램핑 부지를 건설하겠다는 간담회가 열린다. 타쿠미(오미카 히토시)와 그의 딸 하나(니시카와 료)를 비롯한 주민들은 반대하고 나선다. ‘드라이브 마이 카’ 이후 2년 만에 부산을 찾은 감독은 “개인적인 생활 공간에 도시의 논리가 들어오는 순간에 주목했다”며, “눈앞의 이익에 현혹해 이어지는 일을 생각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패턴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 간편한 플롯은 긴 침묵과 대화를 탐구하기를 즐기는 하마구치의 언어를 만나면 그 문제의식을 삶의 견지로 확장한다. 고요한 겨울 햇빛과 자연 풍광은 산문시적 분위기를 더하고, 장면과 균형을 이루는 음악은 뉘앙스에 힘을 실어 준다. 제80회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 수상작. 2024년 개봉 예정이다.

사진 제공 그린나래미디어

추락의 해부 - 쥐스틴 트리에

산드라(산드라 휠러)는 유명한 소설가다. 아직 이렇다 할 작품을 내지 못했지만 그의 남편 사뮈엘(사뮈엘 타이스)도 작가다. 이 작가 부부는 시각 장애가 있는 아들 다니엘(마일로 마차도 그레이너)과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진 프랑스 산골에 1년째 살고 있다. 어느 날 사뮈엘이 집 앞 마당에 죽은 채로 발견된다. 사고인지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는 수상한 죽음을 두고 수사가 시작되자 산드라는 의심 속에 기소당한다. 재판에 참석한 다니엘 역시 어머니에 대한 의심을 키우게 되면 영화는 전환점을 맞이한다. 법정에서 사람들이 산드라의 혐의보다 개인사에 관심을 가졌듯, ‘추락의 해부(Anatomy of a Fall)’는 추락사 미스터리에 대한 해부라기보다, 결혼과 가족을 둘러싼 굴곡을 드러내는 해부다. 쥐스틴 트리에 감독은 문학적 진실성과 아이디어 절도, 경험과 허구의 경계를 소재로 쓰고, 시력이 좋지 않은 어린아이 캐릭터라는 은유를 빌려 진실의 모호성에 주목했다. ‘추락의 해부’는 법정극이자, 엉킨 관계를 그린 드라마, 살아남기를 바랄 뿐인 이들의 이야기이며, 산드라 휠러는 영화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데 크게 거들었다. 제76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개봉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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